영화를 안보신 분이라면 영화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으니 유념해주세요~
감독: 우디 앨런
주연: 미아 패로우, 제프 다니엘스
삶이 너무 고단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니 자주 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만큼은 걱정에서 해방된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으로 1985년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대공황 시대로, 많은 실업자들이 생기고 경제가 어려워 삶이 고단했던 때다. 주인공 세실리아는 이 힘든 세상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영화를 택한다. 남편의 폭력과 무능함, 바람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장치는 영화다. 영화는 세실리아 인생의 낙이다.
극장에 새로운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가 상영되고, 세실리아는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을 찾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보던 세실리아, 그때 스크린 속의 인물인 탐 벡스터가 현실세계로 뛰쳐나오게 된다. 이로 인해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의 대략적인 이야기 흐름이다.
영화에서 뛰어 나온 탐은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순한 인물이다. 영화를 5번이나 보는 세실리아에게 반해 영화 속에서 나온다. 뛰쳐나온 탐은 말한다 "여기서 탈출해요 우리", 영화 속 세계는 탐에게 현실인 것이다. 세실리아와 탈출한 탐은 현실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탐의 탈출로 인해 영화는 진행되지 못하며 영화 속 배우들은 파업을 선언한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사도 난리가 난다. 등장인물이 탈출해 돌아다니는 영화라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가. 제작사는 제작자와 탐 벡스터를 연기한 배우를 영화 속 탐이 있는 곳으로 보낸다. 탐 벡스터를 연기한 배우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영화 속 탐을 다시 영화로 돌려보내려고 애쓴다. 이 과정에서 세실리아는 정말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화는 단순한 영화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평소 내가 상상하던 세계를 보여주는 도구이며 삶의 도피처가 되준다.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영화, 그 속에서 나온 내가 사랑하는 주인공. 그러나 그 영화 속 주인공에게 영화는 현실이었고, 세실리아가 있는 현실이 탐에게는 영화 같은 존재였다. 세실리아와 탐은 서로가 탈출구인 셈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세실리아가 남편을 떠나는 장면이다. 떠나는 세실리아에게 남편은 "넌 돌아올 거야"라며 울부짖는다. 이 장면을 보며 마음속이 조마조마했다. '설마,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이 내 마음 한편을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세실리아가 처한 상황은 영화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배신을 당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다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는 세실리아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영화 같은 삶이 시작되는 줄 알았고, 영화 같은 삶이 진행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영화에 빠져든다.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서, 다시 환상 속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도피처를 찾아서. 나에게도 영화와 책은 일종의 도피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다 보면 삶의 고단함이 잊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면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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