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보
윤희에게(2019) Moonlit Winter
로맨스, 멜로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11.14 개봉
감독: 임대형
주연: 김희애, 나카무라 유코, 김소혜, 성유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하게 된다. 윤희보다 먼저 편지를 발견한 그녀의 딸 '새봄'. 새봄은 편지를 윤희보다 먼저 뜯어본다.
엄마 몰래 편지의 내용을 읽어본 새봄,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자고 엄마에게 제안을 한다. '윤희'는 새봄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일본의 어느 곳, 윤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흰눈
흰 눈이 내리는 철길을 따라 철도는 달린다. 그리고 낯선 여인은 집에서 발견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한국에 도착한 편지는 '새봄'이 먼저 발견해 뜯어본다.
어둑한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윤희'는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인호'를 발견한다. 이혼한 사이지만 술을 먹고 찾아와 사랑한다고 말하는 '인호'는 윤희에게 귀찮은 존재다.
윤희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엄마로서 딸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을 나선다. 영화 시작 보여줬던 흰 눈과 대조되는 그녀의 잿빛 얼굴을 보면, 그녀가 삶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봄'이 먼저 편지를 읽어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편지가 윤희에게 다시 도착한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눈물을 흘리는 윤희, 오래전 잊었던 기억이 편지로 인해 되살아난다. 잊고 싶어서 잊은 추억이 아니기에, 애써 외면해왔던 시간들이 그녀 속에서 되살아난다.
얼마 전 새봄이 자신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던 이유를 윤희는 편지를 받고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이번 기회를 통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지난 '기억'을 마주쳐 보려 한다.
"그래, 기다리지 마"
그녀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에게 말한다. 자신을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고. 윤희는 굳은 결심과 함께 자신을 기다리는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흰 눈이 소복이 덮인 그곳을 향한다.
또 다른 그녀
쥰도 윤희와의 일로 인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다른 누구와도 만나지 못한 채 혼자서 지내고 있다. 자신이 윤희에게서 도망쳤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그녀, 그러던 와중 그녀에게 놀랄만한 일이 생긴다. 바로 윤희의 딸 새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윤희와 함께 여행을 온 새봄은 엄마 몰래 일을 꾸민다. 자신이 먼저 쥰에 대해 알아보고 다닌 뒤, 쥰의 이모인 마사코에게 부탁해 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쥰은 새봄에 대한 소식을 이모에게 듣고 놀란다. 자신의 첫사랑 윤희가 이곳에 있다니. 새봄과 쥰은 그렇게 만나게 된다. 그리고 새봄은 쥰에게 부탁한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쥰은 새봄의 부탁을 허락한다.
약속시간이 되어 장소에 도착한 쥰, 그러나 그곳에는 새봄이 아닌 윤희가 나타난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윤희와 쥰. 이윽고 윤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몰래 지켜보던 새봄은 자신의 남자 친구(몰래 함께 여행 왔다가 엄마에게 걸린) 경수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경수에 입에 입맞춤을 한다.
엄마의 아픈 사랑이 새봄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주변의 시선과 모욕에 아닌 척 단념하고 살아왔을 엄마가 안쓰럽고 애틋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오랜 시간 이루어지지 못한 엄마의 사랑을 보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의 중요함도 알았으리라.
영화 속 새봄(소혜)은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존재다.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후 여행을 가자고 하고, 엄마인 윤희와 쥰을 만나게 해주는 속 깊은 인물이다. 윤희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알기에, 딸 새봄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을 것이다.
서울로 올라가 대학생활을 하는 딸을 위해 뒷바라지하려는 모습과, 딸의 남자 친구를 내치지 않고 함께하는 모습은 분명 자신이 받은 상처를 딸에게는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랑은 자신에게서 끝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새봄도 잘 알았으리라 생각된다.
마무리
영화의 마지막에 윤희와 인호의 대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 출발을 알리기 위해 인호는 윤희를 찾아간다. 윤희는 인호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듣고 놀라며 그를 축복해준다. 그녀의 진심 어린 축복에, 인호는 눈물을 흘린다.
서로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윤희의 잘못도 아닌, 그렇다고 인호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그들의 결혼생활은 종지부가 지어졌으리라 생각된다.
부부로 인연을 맺어 살아왔어도, 윤희는 인호에게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으리라 보인다. "너네 엄마는 사람을 좀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 인호가 새봄에게 했던 말을 통해 윤희와 인호와 결혼생활이 그려진다. 부부지만 부부가 아닌 듯한 상태로 서로를 오해하며 지쳐갔을 것이다.
인호를 향해 진심어린 축하를 해주는 윤희, 마침내 그녀에게서 듣는 진심 어린 말은 그동안 쌓였던 인호의 마음속 짐을 덜어내주었을 것이다.
윤희도 쥰을 만나고 돌아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새봄과 함께 서울로 갈 준비를 한다. 이사를 위해 필요 없는 짐들을 내놓는 윤희와 새봄. 쥰과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 꽁꽁 싸매었던 모든 짐을 흰 눈 속에 놔두고 왔듯, 그들은 새 출발을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을 모두 버린다.
흰 눈은 계절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녹아내린다. 아무리 많은 눈이 내리고 쌓여도 결국 봄이 오면 녹을 수밖에 없다. 축복받지 못한 윤희와 쥰의 사랑은 흰 눈이 되어 그녀들의 마음속에 쌓이고 또 쌓였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그리고 무거운 흰눈이 녹지 못하고 계속 쌓이기만 했다.
그러나 윤희의 딸 새'봄'으로 인해 그녀들의 마음속에도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녹지 않고 영원히 쌓여 있을 것만 같았던 눈은 결국 녹아내려 '새'로운 '봄'을 위한 자양분이 되리라. 늦더라도, 결국 봄은 찾아온다.
남자와 여자의 애틋한 로맨스를 예상했던 나에게, 동성애 코드는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외국 퀴어 영화는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런 스토리가 나온 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캐롤>을 봤던 것이 기억났다. <윤희에게>도 <캐롤>과 같은 여성 사이에서의 사랑을 말하는 영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캐롤>보다는 더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동양적인 애틋함, 우리나라와 일본 로맨스 영화의 느낌이 섞여 있는 듯한 구성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또한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것은 김희애, 김소혜 두 모녀의 연기였다.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윤희라는 인물과 새봄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해냈다. 그리고 차가웠던 눈이 녹아내리는 듯한 영화의 진행을 보며, 내 마음속 선입견도 녹아내린 듯했다.
뒤늦게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다양하고 좋은 영화가 우리나라에 영화계에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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